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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세꼭지 이야기(6월10일)

관리자
2020-07-14
조회수 1269
메모장에  한달이 훅 지난 글쓰기가 있어 그대로 옮겨 보았다.
어제는 자연에 흠뻑 빠진 초록이라면 오늘은 아주 옅은 하늘색이다.
삶이라는게 머리에 보다 가슴에 담아 사는 것이 내게 기쁨을 준다.
어제 직접 수확한 얼갈이 배추를 삶아 된장국을 끓으려 봉지에 담았고 마을 아우가 준 대파도 다듬어 썰어 냉동고에 넣었다. 마늘쫑을 뽑아 고추장 짱아치도 만들어 보았다.먹거리로 가기까지 과정과 시간이 참으로 길고 녹록치가 않음을 그러고도 큰 화분 3개에 채송화, 패랭이, 활련화를 심으려고 삽으로 흙을파서 리어커에 담아 20kg 퇴비를 썪어 담았다. 심한 운동을 할 때보다 온 몸에 땀범벅이 되어도 즐거움으로 족했다. 가슴이 초록이었다. 오늘은 6. 10일이란 걸 T.V가 알려 주었다.
 그시간에 있었던 일들을 베이버 부머 세대는 확연히 기억 할 것이다.  이 때가 되면 습관처럼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먹먹하고 아린 가슴은 더 오래 전 역사 속으로 들어가 목숨을 뺏기고 던진 이름모를 그분들이 떠올라 안스러움과 미안한 마음  그지없다. 
우리 후손들에겐 누구든 존중받는 그리고 보호받는 세상이 오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헌데 오늘 아이러니하게 아들의 삶을 힘들게 했음을 되돌려 
확인한 날이다.미국으로 벌써 출국 해야하는 아들이 코로나 때문에 2주 후에야 가게 되었다. 가야 할 곳에 가는데 아들도 나도 서로의 염려 때문에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다. 아들은 며칠전 유치원 때부터 클 때까지의 마을을 혼자서 걸으며 떠날 준비를 하는것 같았다. 오늘 아들의 제안으로 둘이 그곳을 며칠간 나누어 걷기로 했다. 
30년전 초등 학교 때 살았던 아파트에서 성당까지 걸었던 길이 코아였다. 아들은 그 때 있었던 일과 느낌과 생각까지 또렷이 기억에 내며 여과없이 말해 주었다. 그렇게 큰 단지로 보여졌던 아파트가 이렇게 작은 줄 몰랐었고 성당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멀고 힘들었었다고 가는 길 이쯤에서 무엇이 있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설명해 주었다. 그중 세개의 오락실이 있었는데 두곳은 바뀌었고 한 곳 만이 변하지도 않고 여전히 있다고 아들은 기억해냈다 오락실만 가면 잡혀 왔고 맞고 혼났다고 했다. 왜 그랬냐고 내게 물었다. 그냥 두셨어야지요. 
갈 수도 있는거아니냐며 붙히기까지 했다. 
엄마 아빠가 빈틈을 주지 않은 것이 지금 삶에 어려움을 준거이라했다. 그러게 말이다. 
내가 잘못한거지. 진정 사과하고 싶었다.  
그렇잖아도 자연 시간표 대로 살게 해 주는것이 최선이란 걸 아들이 크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아들의 삶에 짐을 준 것이다. 아들은 스스로를 간잽이라했다. 재고 또 재고 간만 보다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시도하지 못한 때가 수도 없다 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두시간 여를 걸었다.
오늘은 흐릿한 하늘색이었다.
역사의 의미가 깊은 6월10일 그리고 아들과 걸었던 시간들 즐겁진 않았지만 차분했고 생각을 하게 했다
잘 사는 나라 보다 모두가 존중받고 보호받는 나라를
바란다면  아들도 그안에 포함 돼 있는국민 일 진데
방해가 됐다는 생각도 해본다. 개인의 역사 앞에 나는 어떤 사람이며 역활은 무엇인가? 출국 전까지 함께 많이 걷자는 아들의 제안에 고맙고 미안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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